
애마지도(愛馬之道) . 자신이 키우는 말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육사가 있었다. 그는 말똥을 광주리에 직접 받아내고 말의 오줌을 큰 조개껍데기로 만든 귀한 그릇에 담아 처리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매일같이 말의 털을 빗겨주고 좋은 사료로 말의 배를 채워줬다. 어느 날 자신이 사랑하는 말의 등에 파리가 한 마리 앉아서 말을 괴롭히는 것을 보게됐다. 그는 손바닥으로 세게 쳐서 파리를 잡았다. 그런데 말은 사육사가 자신을 때린다고 생각하여 깜짝 놀라 뒷발로 사육사의 갈비뼈를 찼다. 결국 사육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됐다. 사육사가 사랑해서 한 행동이 말에게는 상처가 된 것이다.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意有所至(의유소지) 사육사가 말을 사랑하는 뜻(意)은 지극(至)하였다. 愛有所亡(애유소망) 그러나 사랑(愛)의..

[가을 시] 가을의 시 모음 (30편) 1) 가을 편지 1 / 이해인 詩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2) 가을 / 정호승 詩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3) 가을에 / 오세영 詩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나 함께 있는 까닭에 ..

1) 11월에 / 이해인 詩 나뭇잎이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하나 연륜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받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야위어 간다. 2) 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 이채 詩 청춘의 푸른 잎도 지고 나면 낙엽이라 애당초 만물엔 정함이 없다 해도 사람이 사람인 까닭에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어느 하루도 소..

중년의 가슴에 10월이 오면 . 내 인생에도 곧 10월이 오겠지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드높은 하늘처럼 황금빛 들녘처럼 나 그렇게 평화롭고 넉넉할 수 있을까 쌓은 덕이 있고 깨달은 뜻이 있다면 마땅히 어른 대접을 받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속절없이 나이만 먹은 한낱 늙은이에 불과하겠지 스스로를 충고하고 스스로를 가르치는 내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갈고 닦은 연륜의 지혜로 내가 나를 지배할 수 있다면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모든 푸른 잎은 떠나가도 나무는 살아있듯 모든 젊음은 떠나가도 내 안에 더 깊은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곧 10월이 오겠지 그때 나는 어떤 빛깔일까 빨간 단풍잎일까 노란 은행잎일까 이 가을처럼 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채 시

10월 아침에 .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을 기다렸던 사람도 있을 테고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나처럼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당당하게 10월의 맞이하고 10월의 주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10월 지금부터 내 10월은 나를 위한 10월로 만들겠습니다.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낙엽 보이는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커피도 마시면서 내 안에 찾아온 10월을 즐기면서 보내겠습니다. 생각 한 번 바꾸었는데 쓸쓸한 표정 짓던 10월이 꽃다발 같은 미소로 다가섭니다. "그래, 10월! 우리 한 번 잘해 보자" 꽃밭 같은 마음 내밀고 10월을 맞이합니다. 윤보영 시

. 10월의 기도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 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말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 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

. 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린 시절 아토피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나뿐인 딸을 걱정하던 엄마는 건강 음식, 웰빙 마니아가 되셨고, 엄마의 엄명으로 우리 집은 인스턴트 음식이 금지되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주 건강해서 아무거나 잘 먹지만 엄마는 아직도 음식에 예민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아빠가 라면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조금 늦어진다는 소식에 아빠는 후다닥 슈퍼에 가서 라면 2개를 사 오셨습니다. "아빠. 엄마가 알면 난리 날 텐데." "괜찮아. 안 걸리면 될 거야!" 그리고 아빠의 눈물겨운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버너와 냄비를 준비하고, 냄새로 들킬까 싶어 추운 베란다에 쭈그려 앉아 엄마가 안 계..

. 그동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아온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차례차례 세상을 떠났고, 남편이나 자식은 예전처럼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았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도 좋고, 봉사도 좋은데 무엇보다 그녀 안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진짜 뭘 하면서 살고 싶은지, 사춘기 때도 안 하던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걸 배워보자 했습니다. 플루트 연주와 시 쓰기, 만다라 그리기를 배우면서 그녀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

. 3,00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을에서 살던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장례식에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왔습니다. 마을 사람 중 두 명 중 한 명은 장례식을 찾아와 할머니의 삶을 존경하고 돌아가신 것을 슬퍼한 것입니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저명한 명사이거나 지역 정치인이거나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의 평범한 교사였습니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자들의 상점에서 구매하며 살아왔습니다. 근처에 크고, 편하고, 값싼 대형 점포가 있었지만 조금은 멀고 조금은 비싸도, 제자들이 운영하는 옷가게, 잡화점, 식료품점을 일부러 들러 물건을 사며, 성장한 제자들을 칭찬하..

. 어릴 적 엄마는 늘 화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 꼴을 못 보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삐쩍 말라서 밥 먹는 건 또 그게 뭐니!" 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는 엄마가 너무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깐따삐야꼬쓰뿌라떼? 그게 뭐예요?" "엄마, 메뉴판 보고 다시 주문해" "이 아가씨가 내가 커피 달라는데 이상한 소리만 하잖니!" "엄마 내가 집에 가서 타 줄게, 그냥 가자." 조금 더 커서는 진로와 결혼 문제까지.. 엄마와는 하나도 맞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너 그래서, 뭐 먹고 살아갈 건데!!" "엄마가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내 삶에 간섭하는데." "그만 말하고 여기 김치나 가져가!" 쾅! 나는 신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