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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문학

[11월 시] 11월의 시 모음 (30편)

goodlucklife 2023. 10. 3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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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월에 / 이해인 詩

나뭇잎이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하나 연륜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받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야위어 간다.

 

 


2) 중년의 가슴에 11월이 오면  / 이채  詩

청춘의 푸른 잎도 지고 나면 낙엽이라
애당초 만물엔 정함이 없다 해도
사람이 사람인 까닭에
나, 이렇게 늙어감이 쓸쓸하노라

 어느 하루도 소용없는 날 없었건만
이제 와 여기 앉았거늘
바람은 웬 말이 그리도 많으냐
천 년을 불고가도 지칠 줄을 모르네 

보란 듯이 이룬 것은 없어도
열심히 산다고 살았다
가시밭길은 살펴가며
어두운 길은 밝혀가며
때로는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에 잠 없는 밤이 많아 

하고많은 세상일도 웃고 나면 그만이라
착하게 살고 싶었다
늙지 않는 산처럼
늙지 않는 물처럼
늙지 않는 별처럼 

아, 나 이렇게 늙어갈 줄 몰랐노라

 

 

 

3) 또 십일월 / 나태주  詩

들판 끝
바람 끝에
누가누가
사아나?
구린내 함께
소아범
지린내 함께
염소어멈
시든 풀섶
죽은 풀꽃
댕기머리물떼새랑
외눈 치뜨고
사알지,
사알짝.

 

 

 

4) 11월의 느티나무 / 목필균 詩

점점 체온을 잃어 가는
너를 위해
햇살 한 줌 뿌려본다

추워질수록 걸친 옷가지
훌훌 벗어 던지는
자학의 몸짓들

다 쓸려 사라져도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먼길을
뿌리로 서서

너는 시린 바람 안으로 채우며
한 해의 칼 금을 긋고 있구나

 

 

 

5) 11월 /  고은 詩

낙엽을 연민하지 말아라
한자락 바람에
훨훨 날아가지 않느냐
그걸로 모자라거든
저쪽에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느냐
보아라 그대 마음 저토록 눈부신 것을...

 

 

6) 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詩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7) 11월의 편지 / 목필균   詩

지구가 뜨거워졌는지
내가 뜨거워졌는지
아직 단풍이 곱다

갈색 플라타너스 너른 잎새에
네 모습이 서있고

11월이 되고서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꼬깃꼬깃 접힌 채
쓸려간다

모니터에 네 전령처럼
개미 한 마리
속없이 배회하는 밤이 깊다

네가 그립다고
말하기보다 이렇게 밤을 밝힌다
11월 그 어느 날에

 

 

 

8)  11월의 시 /  홍수희  詩

텅텅 비워
윙윙 우리라

다시는
빈 하늘만

가슴에
채워 넣으리

 

 

 

9) 11월의 나무들  / 정연복  詩

세 계절 동안
무성했던 잎새들 

아낌없이 내려놓고
알몸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11월의 나무들은
얼마나 의연한 모습인가 

비움으로써 결연히
맞설 태세인 나무들을 

겨울 칼바람도
어찌하지는 못하리. 

저 나무들이 있어
오고야 말리 

겨울 너머 꽃 피는 봄
기어코 오고야 말리.

 



10) 11월의 노래 / 김용택   詩

해 넘어가면
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
잎을 떨구며
피를 말리며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이 그리워
마을 앞에 나와
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
강을 건너
강가에 앉아
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
못 견디겠어요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
가을은 자꾸 가고
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
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
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
빈 산에 남아
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
해 지고
가을은 가고
당신도 가지만
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
식지 않고 김납니다.

 

 

11) 다시 십일월  / 박영근  詩

꽃 떨어진 그 텅 빈 대궁에 빗물이 스쳐간다
이제 나를 가릴 수 있는 것은 거센 바람 뿐
詩 한줄 없이 바람 속에 시들어
눈 속에 그대로 매서운 꽃눈 틔우리

 

 

 

12) 11월  / 송정란  詩

바싹 마른 입술로
나뭇잎 하나 애절하게
자작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곧 어디론가 떠날 듯한
몸짓으로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고개를 내젓고 있다
양재동에서 안양으로 가는 913번 좌석버스
차장 밖으로 이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해마다 잎을 갈아치우는
나뭇가지의 완강한 팔뚝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린 잎들이 모조리 소스라쳐 있다
더이상 내줄 것 없는 막막함으로
온몸 바스라질 것 같은 눈빛으로
속이 다 삭아버린
사랑에 매달리고 있다

입을 앙다문
여윈 나뭇잎같은 계집 하나,
바싹 마른 입술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13) 11월을 보내며 / 유한나  詩

 

하늘엔 내마음 닮은
구름 한점 없이 말짱하게
금화 한 닢 같은
11월이 가는 구나

겨울을 위하여
서둘러 성전에
영혼을 떨구는 사람도

한 잔의 깡소주를
홀로 들이키며
앗찔하게 세상을
버티는 사람도

가을과 겨울의
인터체인지 같은
11월의 마지막
계단을 밟는구나

뜰 앞 감나무엔
잊지 못한 사랑 인양
만나지 못한 그리움 인양
아쉬운 듯 애달픈 듯
붉은 감 두 개
까치도 그냥
쳐다 보고만 가는...

그래 가는 것이다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추운 겨울 바람 찬 벌판
쌓인 눈 속이라도
살아있으니 가는 것이다

희망이란 살아있는 것일 뿐이라해도
사랑이란 더욱 외롭게 할 뿐이라해도
착한 아이처럼 순순히
계절 따라 갈 일이다
사람의 길
사랑의 길을

 

 

 

14)  11월의 시 / 이외수  詩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로 떠나는 모습
독약 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 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

 

 

 

15) 11월에 / 정채봉  詩

만추면서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화장 지우는 여인처럼
이파리를 떨구어 버리는 나무들 사이로 차가운 안개가 흐르고
텅 비어버린 들녘의 외딴 섬 같은 푸른 채전에 하얀 서리가 덮이면 
전선줄을 울리는 바람 소리 또한 영명하게 들려오는 것이어서 
정말이지 나는 이 11월을 좋아하였다. 

삶에 회의가 일어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도
찬바람이 겨드랑이께를 파고들면
 "그래 살아 보자" 하고 입술을 베어 물게 하는 달도 이달이고 
가스 불꽃이 바람 부는대로 일렁이는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의 싸아한 진맛을 알게 하는 달도 이달이며, 
어쩌다 철 이른 첫눈이라도 오게 되면 축복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감사해한 달인가.

 

 

16)  11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  이채  詩

말을 하기보다 말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의 연필을 깎으며 마음의 노트를 펼치고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 고백일지라도
가늘게 흔들리는 촛불 하나 켜 놓고
등 뒤에 선 그림자에게 진실하고 싶습니다

피었을 땐 몰랐던 향긋한 꽃내음이
계절이 가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고
여름 숲 지저귀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어디론가 떠나고 흔적 없을 때
11월은 사람을 한없이 쓸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람결에 춤추던 무성한 나뭇잎은 떠나도
홀로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낙엽의 무덤가에 비석처럼 서 있는
저 빈 나무를 누가 남루하다고 말하겠는지요
다 떠나보낸 갈색 표정이 누구를 원망이나 할 줄 알까요

발이 저리도록 걷고 걸어도 제자리였을 때
신발끈을 고쳐 신으며 나는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그 길에서 하늘을 보고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는 또 누구를 원망했을까요
하늘을, 세상을, 아니면 당신을

비록 흡족지 못한 수확일지라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말 것을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 것을
한줄 한줄 강물 같은 이야기를 쓰며
11월엔 한그루 무소유의 가벼움이고 싶습니다

 

 

 

17) 11월의 허수아비 / 김태인  詩

오소서, 오소서
상처뿐인 이 계절에 오소서

기다리다 흘리는 눈물이
차갑게, 차갑게 얼어붙어
날카로운 고드름 되어
그대 가슴 찌르기 전에

그리움에 지친 영혼
구름처럼 붉은 노을 되어
어딘지 모를 곳에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에

넘치는 사랑으로
누렇게, 누렇게 삭아 내리는
저 들녘의 얼빠진 바람둥이들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려와

모닥불 같은 사랑으로
굳어진 혈관을 달구어
녹슬어 멈춰 버린 심장에
뜨거운 피를 부어 주오

그대여, 그대여,
꿈속에서 서성이는
신기루 같은 그대여

 

 

 

18) 11월의 시 / 임영준  詩
 
모두 떠나는가 

텅 빈 하늘아래
추레한 인내만이
선을 긋고 있는데
훌훌 털고 사라지는가 

아직도 못다 지핀
詩들이 수두룩한데
가랑잎더미에
시름을 떠넘기고 

굼뜬 나를 버려둔 채
황급히 떠나야만 하는가

 

 

 

19) 11월 / 나태주 詩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건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 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20) 11월  / 오세영  詩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 보면
다들 떠나 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21) 11월의 나무처럼 / 이해인   詩

사랑이 너무 많아도
사랑이 너무 적어도
사람들은 쓸쓸하다고 말하네요 

보이게 보이지 않게
큰 사랑을 주신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찾지 못해
나도 조금은 쓸쓸한 가을이에요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어놓은 사랑을 배우고 싶어요
욕심의 그늘로 괴로웠던 자리에
고운 새 한 마리 앉히고 싶어요 

11월의 청빈한 나무들 처럼
나도 작별 인사를 잘하며
갈 길을 가야겠어요

 

 

 

22) 11월, 다섯 줄의 시 / 류시화    詩

차가운 별
차갑고 멀어지는 별들
점점이 박힌 짐승의 눈들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는 옛날의 애인
아, 나는 11월에 생을 마치고 싶었다.

 

 

 

23)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  / 문태준   詩

 

눕고 선 잎잎이 차가운 기운뿐
저녁 지나 나는 밤의 잎에 앉아 있었고
나의 11월은 그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무덤에 불과하고

오로지 풀벌레 소리여
여러번 말해다오
실 잣는 이의 마음을

지금은 이슬의 시간이 서리의 시간으로 옮아가는 때
지금은 아직 이 세계가 큰 풀잎 한장의 탄력에 앉아 있는 때

내 낱잎의 몸에서 붉은 실을 뽑아
풀벌레여, 나는 다시 짜다오
너에게는 단 한 타래의 실을 옮겨 감을 시간만 남아 있느니

 

 

 

24) 11월  / 노연화   詩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
얼음이 가득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움츠린 어깨마다 수북한 근심
어둠은 더 빨리 얼굴을 들이민다

종종걸음으로 시간을 뒤쫓아도
늘 손은 비어있다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나무들
제자리 묵묵하게 삶을 다진다
비늘 떨군 담담함으로 12월을 기다린다

마지막이란 이름 붙은 것의 앞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거름이라서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것

낙엽을 떨구는 몸짓을 사람들도 한다
잠시 어깨 움츠렸다가
눈이 오면 곧 환하게 웃는다

 

 

 

25)  11월의 시 / 이재곤   詩

 맺히고,
익어서
지닐 수 없을때
텅텅 비워
빈몸으로라도 울리라

다시,
또 다시 살아도
지금같을 삶이 슬퍼서
그때도 지금 같이 울리라

눈에 들여도
가슴에 들여도
채워지지않는 삶의 한도막
슬퍼서 너무슬퍼서
텅텅 비워
빈몸으로라도 울리라

 

 

26) 11월 / 조용미    詩
  
한밤
물 마시러 나왔다 달빛이
거실 마루에
수은처럼 뽀얗게 내려앉아
숨쉬고 있는 걸
가만히 듣는다
 
창 밖으로 나뭇잎들이
물고기처럼
조용히 떠다니고 있다
더 깊은 곳으로
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27) 11월의 마지막 날 / 진장춘  詩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첫눈이 내리다가 비로 바뀌고
다시 비가 눈으로 바뀌곤 한다.
가을과 겨울이 시간의 영역을 다툰다.

단풍나무는 화려한 가을 송별회를 하고
눈바람은 낙엽을 휩쓸며 겨울의 환영회를 벌인다.
가을과 겨울이 줄다리기를 하지만
위풍당당한 겨울에 가냘픈 가을은 당할 수 없다.
젊은이들도 첫눈을 반기며 만남을 약속한다.
가을은 울며 남으로 떠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내년에 오리라.
계절의 쳇바퀴는 누가 돌리나?
추동춘하 추동춘하 추동춘하...
계절의 쳇바퀴를 돌리면서 세월은 간다.
세월이 가면 사람도 가고 만물도 흐른다.

 

 

 

28) 11월이 지는 날 / 이영균  詩

눈부시게 저무는 저 노을빛은
땀내며 타들던 산골 그 아궁이 장작불빛 같다

아이의 사타구니가 노릇노릇 익고
불 내를 품은 얼굴엔 졸음이 잔뜩 달라붙을 때쯤
밥 냄새를 뿜던 장작불 삭은 재 속에서 터지던
알밤의 요란한 웃음
아버지의 등에 업혀온 장작도
호주머니에 담겨온 알밤도
그 저녁 담 넘어 퍼지던 촌락의 냄새도
노을을 등지고
그 돌아서서 웃으시던 아버지의 환한 빛인 듯
11월의 노을빛은 아직 저리 눈부시다.

결실을 내어주고 뿌리 밑 샘까지 말려버린 고목
그 저녁 빛 속에 학 다리로 환히 서 있다

 

 

 

 

29) 십일월  / 이시영    詩

다리 저는 할머니 한 분이 애기를 업고 나와
행길 가에 서성이고 있습니다

곧 들판이 컴컴해질 것 같습니다

 

 

 

30) 11월의 마지막기도 /  이해인   詩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고 갈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가벼운 충만함이여

헛되고 헛된 욕심이
나를 다시 휘감기 전
어서 떠날 준비를 해야지

땅 밑으로 흐르는
한 방울의 물이기보다
하늘에 숨어사는
한 송이의 흰 구름이고 싶은
마지막 소망도 접어두리

숨이 멎어가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으면
희미한 빛 속에 길이 열리고
등불을 든 나의 사랑은
흰옷을 입고 마중 나오리라

어떻게 웃을까
고통 속에도 설레이는
나의 마지막 기도를
그이는 들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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