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입원 중인 환자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마음에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다. 옆에선 그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좀 깎아 줘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사과를 깎았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한 남자가 매우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결혼 후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아내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여자는 피부병을 앓게 되었고 피부병 때문에 아름다움(美)을 서서히 잃을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추녀가 된다면 어떻게 하지? 남편이 나를 미워하게 될 거고... 나는 이를 참을 수 없을 거야." 그러는 사이, 하루는 남편이 일 때문에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자는 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정상적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

남편은 양복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여보, 이 돈은 비상금인데 당신의 핼쑥한 모습이 안쓰러워 내일 고기 뷔페 가서 고기 실컷 먹고 오세요." 눈물은 보인 부인은 "여보, 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내는 다음날 뷔페에 가지 않고 노인정 다니는 시아버지가 며칠째 편찮은 모습이 눈에 어렸다. "아버님 제대로 용돈 한 번 못 드려 죄송합니다. 이 돈으로 신세 진 친구들과 약주 나누세요." 시아버지는 너무나 며느리가 고마웠다. 시아버지는 오만 원을 쓰지 않고 노인정이 가서 실컷 자랑만 했다. "여보게들 울 며느리가 용돈을 빵빵하게 줬다네." 며칠 후 할아버지는 손녀의 세배를 받았다. "오냐" 절을 받고 손녀에게 오만 원을 용돈으로 줬다. 손녀는 "할아버지 고맙..

선배의 남편이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은퇴는 영어로 Retirement, 즉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운다는 뜻과 같습니다. 퇴직하는 날, 선배와 선배 남편은 술을 참 많이 마셨습니다. 선배는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습니다. “30년 넘게 한 직장에 그렇게 다닐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축하받을 일이에요? 당신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그런 남편을 둔 나도 복 받은 여자고." 남편이 "퇴직하면 나 뭐 할까?"라고 묻자 선배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일했는데 이제 실컷 쉬어요." 그러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선배는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세요' 그 후 남편이 여기저기 뭘 알아보고 다니더니 화원을 ..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퇴근길의 남편이 불쑥 노란 국화다발을 내밀었습니다. "웬 꽃 이래? 생일도 아닌데." "당신한테 주는 가을편지야."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날 꽃을 선물한 건 난생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꽃병에 꽃을 꽂아두자 남편도 흐뭇해했습니다. "그렇게 좋아? 이거 단돈 천 원으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몰랐는걸?" 다음날 퇴근길에 남편은 또 꽃을 내밀었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퇴근하는 남편의 손엔 국화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집안이 온통 꽃밭으로 변했고 꽃을 둘 마땅한 장소를 찾는데 점점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됐습니다. 물병에 담아 신발장에 국화꽃..

남편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남자이며, 토목 설계를 전공해서 평생 건축회사에서만 근무했습니다. 남편은 남들이 말하는 무뚝뚝한 조건을 모조리 갖추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혼한 후, 태어난 첫째 아들을 보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남편이 처음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나의 어깨가 무거워지겠군." 그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기합을 넣고 다시 힘내는 그런 남자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 같은 남편의 모습은 저와 아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저녁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만약에 지금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기면 월급은 지금보다 많이 적을 텐데 그래도 우리 괜찮을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무뚝뚝하고 단단한 경상도 남자..

. 어느 토요일이었다. "미안해. 오늘도 많이 늦을지 몰라." "우리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돈 많이 벌어와, 남편."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했다. 한꺼번에 몰려든 작업을 하느라 며칠째 쪽잠을 자며 일하고 있었다. 주말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게 무척이나 미안한지, 출근하는 남편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손을 흔들었다. 남편을 보내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청소와 밀린 빨래를 했다. 그리고는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면서 한가하게 책을 읽는 주말. 그렇게 책을 읽다가 스르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 안은 어둑해져 있었다.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 "당신, 오늘.. 알지요? 이른 아침, 아내의 머리 위에 옥수수가 담긴 함지를 올려 주며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으차! 알았어. 일찍 끝낼 테니 걱정 말라고" 남편은 시장통에서 손수레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짐꾼이었고, 아내는 옥수수를 쪄서 시장에 내다 파는 행상이었습니다. "두 개? 하나? 글쎄, 찰옥수수라니까요" 초여름 뙤약볕 아래 좌판을 벌이고 옥수수를 파는 일은 참으로 고단했지만 아내는 한 푼 두 푼 돈 모으는 재미로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장사를 끝낸 뒤 남편을 위해 선물을 사고 고기며 찬거리들을 한 아름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깐만요.. 아휴, 벌써 몇 ..

. 이미 돌아가신 저희 시부모님은 생전에 트럭에 과일을 가득 싣고 팔았는데 남편은 어린 시절 팔고 남은 과일을 식사 대신 먹던 가난할 때의 기억에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사과를 잔뜩 사 들고 들어왔습니다. 남편이 사과를 사 온 것도 신기한데 사온 사과들은 하나같이 모나고 상처 난 것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남편에게 싫어하는 사과를, 그것도 상태도 좋지 않은 것을 사 왔느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남편은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계속 모난 사과를 사 들고 들어왔지만, 남편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캐묻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가는데 한 할머니가 남편을 보고 말했습니다. "사과 사러 왔어? 오늘은 때깔 좋은..

. 어느 강좌시간에 교수가 한 여성에게 말했다. 앞에 나와서 칠판에 아주 절친한 사람 20명의 이름을 적으세요. 여성은 시키는 대로 가족 친척 이웃 친구 등 20명의 이름을 적었다. 교수가 다시 말했다. 이제 덜 친한 사람 이름을 지우세요. 여성은 이웃의 이름을 지웠다. 교수는 또 한 사람을 지우라고 했고 여성은 회사동료의 이름을 지웠다. 몇 분 후 칠판에는 네 사람 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만 남게 되었다. 교실은 조용해졌고 다른 여성들도 말없이 교수를 바라보았다. 교수는 여성에게 또 하나를 지우라고 했다. 여성은 망설이다 부모이름을 지웠다. 교수는 다시 또 하나를 지우라고 했다. 여성은 각오한 듯 아이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얼마 후 여성이 안정을 되찾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