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 코를 꼭 잡고 입을 열지 않은 채 얼마쯤 숨을 쉬지 않을 수 있는지 참아보십시오. 30초를 넘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보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숨을 쉬려고 노력했습니까? 훗날 병원에 입원해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비로소 숨 쉬는 게 참으로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것입니다. 뛰는 맥박을 손가락 끝으로 느껴보십시오. 심장의 박동으로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 끝까지 피가 돌고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무수히 신비롭게 박동하고 있는 심장을 고마워했습니까? 우리는 날마다 기적을 일구고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기지 않는 기적을 매일매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

작은 시골마을, 세 식구가 사는 오두막에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다섯 살 막내가 않아 누운 지 여러 달째 아이는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못한 채 시들어갔습니다. "으... 음... 아파......." 엄마는 아무런 도리가 없이 앓는 아이의 머리만 쓸어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기적만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듣게 됐습니다. "기적이라도 있었으면.… 제발." 문틈으로 들여다보던 소년은 궁금했습니다. "기적? 기적이 뭐지?" 다음날 아침 소년은 엄마 몰래 돼지 저금통을 털었습니다. "천 원, 이천 원, 오천 원." 돼지가 토해낸 돈은 모두 7천6백 원. 소년은 그 돈을 들고 십 리 길을 달려 읍내 약국으로 갔습니다. "헉헉헉………….” "아이구 얘야, ..

. 1944 년 12월 이른바 발지 전투(Battle of Bulge)로 알려지던 서부전선 대회전 당시에 벨기에 국경 부근 독일 휘르트겐 숲 속 작은 오두막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르덴서 살다가 연합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피난온 열두살 먹은 프리츠 빈켄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야포의 포격,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때였습니다. 비록 쉴 새 없이 포소리가 이어지는 전쟁터이기는 하였지만 민방위 대원으로 근무중인 아버지가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빈켄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었다.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 뒤처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 난 동생에게 뒤처졌다. 그래서 '누구의 형'이라는 식으로의 소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 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 중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 난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친구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나에겐 그것마저 큰 컴플렉스였다.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 다니지만... 내 옆에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임에서의 단체 활동으로 봉사 활동을 나가게 되었다. ..